3월 1일이 되면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아마도 모두 한 번씩은 떠올리는 그때, 그날.
제목에서부터 알 수 있듯이 이 영화는 유관순 열사의 마지막 1년의 생애를 다룬 작품입니다. 1919년 아우내 장터 만세 운동 이야기부터 서대문 형무소에 투옥되어 만세운동을 하고 그렇게 투옥과 고문까지.
8호실 수감.
1919년 3월 1일 아우내 장터에서 만세운동이 시작됩니다. 차를 몰고 온 일본군들은 단지 거리를 걸으며 나라를 되찾기 위한 만세운동을 하는 무고한 시민들에게 총질, 칼질하며 무차별적인 살인을 합니다. 7천 5백명이 살해당하고 4만 7천명이 체포되었습니다. 유관순의 부모님도 그 자리에서 돌아가시고, 만세 운동을 주도했던 관순은 서대문 형무소에 투옥됩니다.
3년 형을 선고받은 17세 유관순은 서대문감옥 8호실에 갇혔습니다.
그녀가 수감된 방은 8호실. 너무나 비좁아 다 같이 앉을 수도 없는 그곳에는 이미 많은 여인이 서 있습니다. 가만히 있으면 발이 붓기 때문에 방을 계속 돌아야 합니다. 그녀들은 특수 부대 출신이나 어디서 훈련받은 육체적으로나 정치적으로나 뭐 대단한 능력을 갖춘 사람들이 아닙니다. 그저 나라를 되찾기 위해 만세를 했을 뿐입니다.
재소자 중에 유관순의 같은도네 만석 어머니도 있었습니다. 경성에서 공부하고 내려온 유관순이 만세운동을 선동하여 자기 아들이 죽었다고 그녀를 원망합니다. 그러자 기생 출신 김향화가 말합니다.
만세, 누가 시켜서 했습니까?
유관순은 차마 밥을 먹을 면목이 없어 얼굴을 숙이고 만석 어머니에게 자기 밥을 내밀지만 만석 어머니는 버럭 화를 내며 밥그릇을 던집니다. 다른 한 여인, 유관순의 이화학당 선배 권이라고 이 쏟아진 밥을 담아줍니다. 억지로라도 밥을 먹고 살아있어야 한다고.
그렇게 다리가 붓지 않기 위해 계속 걷습니다. 그렇게 걷다가 누군가 아리랑을 흥얼거리면, 그녀들은 금세 따라부릅니다. 간수가 찾아와 소리치면 그녀들은 조용해집니다. 그러한 신세가 개구리 같다고, 유관순이 자조하자, 8호실 여인들은 킥킥 웃다가 “개굴개굴” 소리를 냅니다.
다 를 내자, 유관순은 “우리는 개구리가 아니다”라고 합니다. 한국말을 모르는 간수가 무슨 소리냐 묻자, 눈치 없는 이옥이가 일본어로 "우리는 개구리가 아니다" 라 말합니다. 간수가 밥을 주지 않겠다고 하자, 그녀들은 대놓고 아리랑을 부릅니다. 이 8호실에서 시작한 아리랑은 교도소 전체로 퍼지고 애국가가 됩니다.
교도소장은 조선인 특채 군사경찰 니시다에게 주동자를 색출하라고 명령하고, 또다시 이옥이가 니시다의 술수에 걸려들자, 유관순이 나서 대신 폭행을 당합니다. 모진 폭행과 벽관 고문을 당한 유관순이 돌아오자 여인들은 이옥이와 유관순을 밀고한 임명애를 비난합니다. 김향화가 다시 말합니다.
왜놈들이 한 짓이지 누굴 탓 하오?
유관순은 얌전한 척하며 감방 외부의 노역을 청하고 3.1운동을 위해 날짜를 세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1주기에 기미독립선언서를 암송하고 만세를 부릅니다. 이 만세는 같은 방 동료들이, 그리고 다른 방 죄수들이 함께 부르며 감옥에 울려 퍼지고 바깥 거리로 퍼져 일반인들도 만세를 부릅니다.
대한독립만세.
다시 그녀는 주동자로 끌려가 모진 고문을 당하고 지하 독방에 갇힙니다.
그리고 얼마 후, 대한제국 황태자 영친왕과 일본의 방계 황족 나시모토미야 마사코가 혼인합니다. 이를 축하하기 위해 그리고 대한민국 사람들을 회유하기 위해 교도소 수형자들의 형기를 절반으로 감형하는 특사가 진행됩니다. 그렇게 8호실 여인들은 모두 출소하지만, 형기가 길었던 유관순에게는 6개월가량이 남습니다.
그녀는 특사 감형 소식을 고지받을 때도 반항했습니다. 그녀에겐 죄가 없었으니 감형받을 죄도 없었습니다. 다시 무자비하게 폭행을 당하고 몸이 망가지고, 식사 배급 담당이었던 남자 옥사의 죄수가 묻습니다.
왜 그렇게까지 하는 거요?
그럼 누가 합니까.
1920년 9월 28일에 출소를 이틀 남기고 유관순은 옥중 사망합니다.
고문 그러나 나라를 위한 고통만큼은 아니다.
유관순은 주동자로 색출되어 여러 번 끌려가 고문을 당합니다. 영화 속에 나온 고문실은 보기만 해도 끔찍했는데 실제로는 그것보다 훨씬 끔찍했을 겁니다. 두 팔을 결박해 공중에 매달아 때리고, 족쇄를 채워 좁은 공간에 움직일 수 없이 서 있게 하여 사지를 마비시키는 벽관 고문 등. 실제 행해진 고문 기록을 보면 차마 다 읽어 내려갈 수 없을 만큼 끔찍합니다. 일본 사람들은 역사적으로 창의적인 고문에 아주 능했다고 합니다.
유관순을 고문했던 사람도 대한민국 사람이었습니다. 일본인들은 일부러 대한민국 사람에게 고문시키기도 했습니다. 모든 사람에게 독립운동을 하신 분들과 같은 마음을 기대할 순 없겠지요. 그렇다면 애초에 나라를 빼앗기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테니까요.
하지만 이런 육체적인 고통은 나라를 위한 고통에 비할 바가 아니었습니다. 이런 고문에도 유관순의 영혼을 결박할 수는 없었습니다. 이런 고문에도 8호실에 수감되어 있던 그녀들의 나라를 되찾고자 하는 의지까지 결박할 수는 없었습니다.
해방 이후 유관순을 고문했던 정춘영을 포함하여 일제의 편에서 같은 민족을 고문했던 사람들을 체포했지만 정권에 의해 동 위원회가 강제 해산되면서 이후 어떤 처벌도 받지 않게 됩니다.
내 손톱이 빠져나가고, 내 귀와 코가 잘리고, 내 다리가 부러져도,
그 고통은 이길 수 있으나 나라를 잃은 고통만큼은 견딜 수 없습니다.
나라에 바칠 목숨이 오직 하나밖에 없는 것이 이 소녀의 유일한 슬픔입니다.
누구도 시키지 않았지만 하지 않을 수 없었던 독립운동.
철저한 고증을 거쳐 8호실 여인들 모두 실존 인물을 그대로 그려냈다고 합니다. 과거를 회상할 때, 유관순이 죽음을 맞이했을 때를 제외하면 컬러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영화적인 극적인 요소 없이 덤덤하게 마치 다큐멘터리처럼 영화는 진행합니다. 사실 이보다 더 극적인 내용이 어디 있을까 싶습니다. 누구의 강요도 없이, 어떠한 대가가 있었던 것도 아닌, ‘우리나라’의 독립을 위해서 고문을 견디고 그렇게 돌아가신 수많은 분.
이런 영화들은 영화적인 흥행을 떠나 계속 만들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결코 되풀이되어서는 안되는 역사를 잊지 않을 수 있도록 말입니다. 대사 하나하나가 명대사였습니다. 보는 내 아픈 역사를 되돌아봐야 하기에 마음이 아팠지만 그런데도 봐야 했습니다.
누군가 그러더군요. 우리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그때 그분들을 잊지 않는 일이라고.
영화를 보는 내내 과연 나였다면, 내가 저 시대에 살았다면 할 수 있었는가를 고민했습니다.
특별한 이유 없어도 한 번씩 보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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