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자산어보는 정약용의 형 정약전에 대한 이야기를 다룹니다.
중학교 혹은 고등학교 역사 시간에 ‘자산어보’에 대해서는 한 번쯤 들어본 적이 있을 텐데요. 자산어보는 정약전이 흑산도 유배 기간 흑산도 연해에 사는 어족의 모양과 특징 등에 대해 기술한 책입니다. 흑산이라는 말이 검을 흑자를 쓰고 있어 음침하고 어두운 느낌이 들어 가족에게 편지를 보낼 때마다 흑산 대신에 자산이라고 일컬었기 때문에 이 저서의 이름도 자산어보가 되었다고 합니다.
영화는 잔잔하게 정약전과 흑산도에서 만난 그의 제자 창대가 함께 교감하고 우를 쌓으며 책을 집필하게 되고 그 이후의 이야기를 그립니다. 백성들의 소박한 삶과 당시 대 인물들의 차별 없는 평등을 강조하기 위해 흑백 영상을 사용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창대의 신념이 동하는 순간 잠깐씩 드러나는 ‘푸른 밤하늘’은 유독 생생하게 느껴집니다.
흑산도와 강진으로
순조 1년, 성리학이 학문의 주를 이루던 조선에도 외국의 문물들이 유입되기 시작합니다. 정약전(설경구), 정약용 형제는 서학을 공부하게 되고 이 죄목으로 정약용은 강진으로 정약전은 흑산도로 유배를 갑니다. 흑산도는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에는 세상의 끝이라 불리며 세상에서 잊히게 만든다는 말이 있을 만큼 속세에서 아주 먼 곳이었습니다.
정약전은 실용 학문의 대가로 이름을 남겼습니다. 학문이란 자고로 백성에게 이로워야 한다고 믿었던 학자였습니다. 흑산도에 유배를 와서도, 보통 양반이라고 한다면 모든 의욕을 잃어버렸겠지만 이런 정약전은 낯선 세계에 대한 호기심을 보여줍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흥미롭게 다가왔던 부분이 흑산도 백성들의 사는 모습과 그들의 삶과 뗄 수 없었던 바다와 그리고 바다생물들이었습니다.
학문만 하고 살아온 정약전 학문에 목마른 창대
이 흑산도에는 창대(변요한)가 살고 있습니다. 어부로 살고 있지만 배움에 대한 열망으로 늘 책을 봅니다. 아버지는 양반이나 첩의 자식으로 상놈이 되어 흑산도로 들어와 살고 있습니다.
물에 빠진 정약전을 창대가 구해주지만 어떤 음식을 먹어도 입에 맞지 않고 마음의 병을 앓게 됩니다. 정약전을 보살피던 가거댁은 창대로부터 받은 문어를 요리해 대접합니다. 육지에서는 쉽게 볼 수 없었던 문어 요리를 먹은 정약전은 회복한 후 창대에게 도움을 주고자 합니다. 하지만 상놈임에도 학문을 배워 출세를 통해 신분을 바꾸고자 하는 욕망이 있던 창대는 임금도 아버지도 없는 모든 백성이 평등하다는 서학을 공부한 정약전이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그러던 중, 공부하다가 막히는 부분이 있을 때마다 답답해했던 창대를 보고 정약전은 창대와 거래를 하자고 합니다. 창대가 가지고 있는 바다 생물에 대한 지식을 나눠주면 창대에게 학문을 가르쳐 주겠다 합니다. 정약전은 흑산도의 다양한 바다 생물들을 보며 창대와 함께 바다 생물의 모든 것에 대한 책을 집필하고자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서로 다른 환경에서 살아온 둘은 서로에게 각자 분야의 스승과 제자가 되어 지식과 삶을 나누게 됩니다. 저는 이 부분이 이 영화가 보여주고자 했던 진짜 본질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학문이란 저마다의 이름으로 그럴 듯하게 포장되어 시대와 상황의 이익에 맞게 해석되지만 그 본질은 모르는 것을 앎으로 해서 삶을 이롭게 하게 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정약전과 창대는 계급과 나이, 배경을 떠나 자신이 가장 잘 아는 것을 서로에게 가르쳐 주면서 친구가 되어가고 여기에는 진실로 스승과 제자는 있을 수 없습니다.
그렇게 서로 교류하며 정약전은 자산어보의 초안을 쓰고 창대는 학문을 익힙니다. 그러던 중 성리학의 이치를 학문하는 본질로 여기는 창대는 육지로 나가 큰 꿈을 펼치고 싶어 하지만, 정약전은 이를 반대합니다. 세상에 나아갔을 때 창대가 받게 될 실망과 상처들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런 둘은 크게 싸우게 되고, 창대는 결국 육지로 건너가 진사 시험에 합격합니다.
과거에 합격한 후, 자신을 외면한 아버지의 인정을 받는 것처럼 보였고 관아에서 일도 하게 됩니다. 하지만, 이상과 현실의 벽은 과거 급제로 없어지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성리학으로 세워진 나라에서 성리학을 공부하면 세상에 이로운 일을 할 수 있으리라 믿었으나 현실을 그렇지 않았습니다.
창대가 세상의 벽에 부딪히는 동안, 정약전은 책을 마무리하지만 결국 생전에 유배형이 풀리지 못한 채 손에 붓을 든 채로 숨을 거두게 됩니다. 세상의 부조리함에 가족과 함께 다시 육지를 떠나 돌아오던 중 정약전의 사가에 들르게 되고 그의 장례를 마주합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발견한 자산어보를 들고 다시 자신이 성장해온 흑산도로 돌아오며 영화는 끝이 납니다.
불완전한 둘이 만들어낸 자산어보
조선의 양반으로 서학을 공부했다는 벼슬아치는 “쌍놈의 자식”이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고, 신분을 구분 짓고 그것이 세상의 이치라는 성리학에 빠진 상놈은 차별을 견디지 못합니다. 이토록 불완전한 인물들이 아닐 수가 없습니다.
이 둘이 서로를 받아들이고 삶을 나누지만, 그 교감도 각자의 신념을 바꿀 수는 없었던 탓에 다시 갈라섭니다. 그러면서도 계속 서로를 생각하고 그 시간을 그리워하는 모습이 참으로 특별하다고 느꼈습니다. 서로를 통해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세상을 배웠던, 서로에게 스승과 제자였던 둘은 그렇게 인생의 특별한 사제 지간이었습니다.
자산어보는 단순히 바다 생물의 모든 것을 담은 백과사전이 아니라, 정약전과 창대의 우정이 만들어낸, 두 전혀 다른 불완전한 둘이 이해한 바다생물에 관한 책이라 생각하니 역사적 유물이기 이전에 좀 더 특별한 책이 되는 것 같습니다.
결국에는 실용학도 성리학도 아니다
학문이란, 특정 이론도 아니고 어려운 글자도 아니고 새로 배워 세상을 이롭게 하는 것입니다. 정약전과 창대의 대립과 우정의 과정을 통해 학문에 대해 새삼 다시 생각해보았습니다.
요즘같이 모든 소식이 즉각적으로 전해지는 시대에 유배행을 오른 정 씨 형제들이 서로를 그리워하며 서찰을 주고받는 모습을 보니 문득 오늘 하루를 조금 느리게 보내도 될 거 같은 마음의 치유가 되었습니다. 영화 자산어보는 정약전의 일생과 창대와 함께 자산어보를 집필하는 과정 외에도 당시를 각자의 삶에서 열심히 살았던 백성들의 삶의 모습을 담아내고 있습니다.
가끔 공부하기가 싫어지는 날, 달콤한 케이크 한조각과 함께 보면 좋겠습니다.
'우당탕탕문화생활' 카테고리의 다른 글
봄 아이와 꼭 가야하는 전시회 총정리와 가야하는 이유 (0) | 2023.03.06 |
---|---|
영화 스마트폰을 떨어뜨렸을 뿐인데 – 화면이 고장 났으면 그냥 버려라 (0) | 2023.02.25 |
영화 조커_비극이었나 코미디였나 (0) | 2023.02.12 |
영화 항거- 유관순 이야기_ 대한독립만세 (0) | 2023.02.12 |
영화 연애 빠진 로맨스 _ 이 남자가 손석구? (0) | 2023.02.11 |
댓글